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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옛날이야기

생애 처음 직장 상사에게 털렸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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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대위는 3사관학교 출신의 육군 장교다. 본인의 의지로 포기한 것인지, 도태되어 버린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내가 그의 부하가 된 시점에 그는 군 생활에 뜻을 접고 전역을 앞두고 있었다.

 

N대위는 풍채가 아주 좋았다. 백인만큼 뽀얗고 하얀 얼굴에 북극곰처럼 덩치가 컸다. 게다가 군인과는 어울리지 않는 강아지 상에 가까운 곰의 얼굴이라 사람 좋고 푸근할 것 같은 첫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첫인상만 그랬다.

 

N대위는 우리 소대를 싫어했다. 대놓고 싫어했다. 우리 소대 부소대장은 전역장교 출신이었다. 심지어 N대위와 같은 3사관학교 출신 선배이다. 그래서 그런지 유달리 우리 소대를 싫어했다. 훈련 때에는 우리 소대만 늘 가장 선봉에 서고, 가장 먼 곳 가장 높고 험한 곳에 진지를 편성해야 했다. 번갈아가면서 하는 소대 체력 안배 따위는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중대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병사들은 모조리 우리 소대에 있었다. 그 덕분에 나는 항상 노심초사하며 병력관리를 해야만 했다. 수시로 병영에 남아서 상담하고 그 기록을 남겨놓은 것은 기본중에 기본이고, 관심 병사들이 화장실에 10분 이상 있으면 신변을 우려해야 했고 휴가를 보내야 할 날이 다가오면 정상적으로 복귀할까부터 걱정해야만 했다. 결국에는 탈영사고도 경험하게 되었다. 다행이도 탈영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나는 꾸준히 우려가 된다고 보고하고, 기록해왔기 때문에 탈영사고가 났음에도 징계는 커녕 주의조치도 받지 않았지만.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처음 상사에게 혼난 경험도 N대위가 나에게 마련해 주었다. 때는 합동훈련 2일차였다. 적당한 높이의 고지에서 소대별로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다. 점심은 행정보급관이 정성스럽게도 비닐주먹밥이 아니라 그 날 식단을 그대로 산으로 올려주었기 때문에, 누군가는 배식을 하고 누군가는 밥을 먹어야 했다. 1분대, 2분대, 3분대, 소대본부 중 어디를 배식시키고 어디부터 밥을 먼저 먹여야 할까?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대장들을 불러모았다. 그리고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대었고, 분대장들과 내린 결론은 가위바위보. 누가 이겼고 누가 졌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가위바위보를 시키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N대위에게 탈탈 털렸기 때문이다.

 

소대원들이 모두 보는 한가운데서 아주 신나게 털렸다. 소대장으로서의 자질 문제까지 거론되었던 것 같다. 욕을 먹게 된 요지는 "소대 지휘를 가위바위보로 하는 것이 제정신이냐" 라는 것이었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 저날의 내가 잘못되었는지 잘못되지 않았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 당시의 내 감정이 어땠었는지도 이제는 흐릿해서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사회 초년생이었던 당시의 나는 말도 안되는 소리로 욕먹은 것 같기는 한데, 기분나쁨을 어디 풀지도 못하고 혼자 속으로만 참았을 것이다.

 

이제와서 N대위에게 앙금이 남았다거나 그런건 전혀 없다. 이미 기억 저 편 너머로 멀리 날려보낸 사람이라, 이름이 뭐였는지조차도 한참을 떠올려서 기억해냈다. 같이 밥을 먹었던가? 회식이라는 걸 했던가에 대한 기억도 없고, 무슨 대화를 나눴었는지 이 사람이 전역할 때 나는 무엇을 했었는지 등등 대부분이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직장생활 생애 최초로 상사에게 털린 이 기억만큼은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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